인스타그램에서 “개역개정 성경에는 왜 어떤 구절이 없음으로 표시되어 있느냐”는 질문을 보았다. 댓글을 통해 여러 사람들이 코멘트를 남기고 지나갔는데, 특히 KJV(킹제임스버전) 성경에는 있는데 개역개정에는 괄호 안에 “없음”으로 표시된 구절들을 두고, 마치 누군가 성경을 의도적으로 삭제한 것처럼 말하는 경우가 있었다.
하지만 이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핵심은 “성경을 지웠느냐”가 아니라 “어떤 사본을 더 원문에 가까운 것으로 볼 것인가”의 문제다. 개역개정의 ‘없음’ 표기는 신앙의 후퇴가 아니라, 사본 차이를 독자에게 알리는 일종의 정직한 표시로 볼 수 있다. 일부 후대 사본에는 해당 구절이 있지만, 더 이른 주요 사본들에는 없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KJV이 1611년 이후 영어권 교회와 문학, 설교 전통에 남긴 영향은 결코 작지 않다. 그 장엄한 문체와 예배적 울림은 지금도 많은 사람에게 깊은 감동을 준다. 그러나 KJV가 사용한 신약 본문은 주로 에라스무스와 베자 등을 거쳐 형성된 TR, 곧 공인본문 전통에 기대고 있다. 이 본문은 교회사적으로 중요한 가치가 있지만, 오늘날 발견된 더 오래된 사본들과 항상 일치하지는 않는다.
반대로 개역개정은 한국 교회가 오랫동안 사용해 온 개역한글의 흐름을 존중하면서도, UBS 계열 그리스어 신약성경과 BHS 히브리어 구약성경을 대조해 수정한 번역이다. 그래서 “사도들이 기록한 가장 이른 형태의 본문에 가까이 가려는 노력”이라는 기준에서 보면, 개역개정은 충분히 신뢰할 수 있는 번역이다.
물론 이것이 KJV를 무가치하게 만든다는 뜻은 아니다. KJV는 전통의 무게를 지닌 성경이고, 개역개정은 한국 교회 공예배와 일상적 성경 읽기에 적합한 본문이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태도는 둘 중 하나를 우상화하거나 공격하는 것이 아니다. 개역개정을 기본으로 읽되, 논쟁이 되는 구절은 KJV와 주석 성경을 함께 대조해 보는 것이 좋다.
성경을 신뢰한다는 것은 아무 질문도 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정직한 질문을 통해 하나님께서 말씀을 역사 속에서 어떻게 보존해 오셨는지를 더 깊이 배우는 일이다. “없음”이라는 표시 앞에서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그것은 성경이 흔들린다는 증거가 아니라, 교회가 말씀 앞에서 더 정직해지려 흔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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