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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지를 선교지로(사 40:12-17) 살다 보면 내가 선택하지 않았는데도 감당해야 하는 자리가 있습니다. 원해서 시작한 일이 아닌데 끝까지 책임져야 하는 자리, 기대했던 방향과 전혀 다르게 흘러간 현실, 기도했지만 쉽게 바뀌지 않는 환경 앞에서 우리는 문득 묻게 됩니다. “나는 왜 여기에 있는가.” 이 질문은 믿음이 없어서 나오는 질문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더 깊어지는 질문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왜 나를 이 자리에 두셨는가. 하나님이 선하시다면, 왜 이 현실을 허락하셨는가. 신앙은 때로 이 질문 앞에서 더 정직해집니다. 이사야 40장은 바로 그런 마음을 가진 백성들에게 주어진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그들은 고향만 잃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배하던 자리, 찬양하던 자리, .. 2026. 5. 31.
개역개정 ‘없음’ 구절 논쟁 인스타그램에서 “개역개정 성경에는 왜 어떤 구절이 없음으로 표시되어 있느냐”는 질문을 보았다. 댓글을 통해 여러 사람들이 코멘트를 남기고 지나갔는데, 특히 KJV(킹제임스버전) 성경에는 있는데 개역개정에는 괄호 안에 “없음”으로 표시된 구절들을 두고, 마치 누군가 성경을 의도적으로 삭제한 것처럼 말하는 경우가 있었다.하지만 이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핵심은 “성경을 지웠느냐”가 아니라 “어떤 사본을 더 원문에 가까운 것으로 볼 것인가”의 문제다. 개역개정의 ‘없음’ 표기는 신앙의 후퇴가 아니라, 사본 차이를 독자에게 알리는 일종의 정직한 표시로 볼 수 있다. 일부 후대 사본에는 해당 구절이 있지만, 더 이른 주요 사본들에는 없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KJV이 1611년 이후 영어권 교회와 문학,.. 2026. 5. 21.
우리는 결국 무엇인가를 예배하며 산다 예배는 단순히 교회 안에서 드리는 종교적 행위가 아니다. 물론 우리는 주일마다 예배당에 모여 찬양하고, 말씀을 듣고, 기도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그러나 예배의 본질은 그보다 훨씬 깊다. 예배는 인간이 무엇을 가장 귀하게 여기며 살아가는가를 드러내는 삶의 방향이다. 사람은 누구나 무언가를 바라보며 산다. 어떤 사람은 성공을 향해 달려가고, 어떤 사람은 돈을 붙들며, 또 어떤 사람은 인기와 인정, 관계와 안정 속에서 자기 삶의 의미를 찾는다. 신앙이 있든 없든 인간은 결국 무엇인가를 예배한다. 종교개혁자 존 칼빈이 인간의 마음을 “우상을 만들어내는 공장”에 비유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는 마음은 반드시 다른 무언가를 하나님처럼 붙들게 된다. 그러므로 중요한 질문은 “나는 예배하는.. 2026. 5. 20.
복이 된 번영, 짐이 된 번영 “복 받으세요.” 교회 안에서 이보다 더 익숙한 인사말이 있을까. 예배를 마치고 헤어질 때, 명절에 안부를 주고받을 때, 누군가의 앞날을 축복하고 싶을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이 말을 건넨다. 말 자체는 따뜻하다. 그 안에는 상대가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 평안하기를 바라는 마음, 하나님 안에서 좋은 일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 그러나 때로는 가장 익숙한 말 속에 가장 깊은 오해가 숨어 있다. 우리는 너무 자주 “복”을 말해왔지만, 정작 성경이 말하는 복이 무엇인지는 충분히 묻지 않았다. 복은 어느새 물질적 안정, 건강, 자녀의 성공, 좋은 직장, 좋은 결혼, 사회적 인정과 거의 같은 뜻으로 사용되어 왔다. 신앙은 잘되는 삶으로 가는 길처럼 이해되었고, 하나님은 그 성공을 보증해 주시는 분처럼 오.. 2026. 5. 20.
성장한 교회는 무엇을 잃었는가 한국 사회에서 교회는 오랫동안 ‘성장’의 상징이었다. 빠르게 늘어나는 교인 수, 점점 커지는 예배당, 주차장을 가득 채우는 차량들, 연간 수십억 원에 이르는 헌금 총액은 한때 교회의 부흥을 설명하는 익숙한 언어였다. 교회 안에서는 그것을 하나님의 축복이라 불렀고, 교회 밖에서는 그것을 종교 권력의 확장이라 바라보았다. 그러나 이제는 조금 다른 질문이 필요하다. 교회는 왜 이토록 부유해졌는가. 그리고 그 부유함은 과연 복음을 더 선명하게 드러냈는가. 성장은 언제나 매력적인 단어다. 더 많은 사람이 모이고, 더 큰 공간이 필요해지고, 더 다양한 프로그램이 운영되는 일은 겉으로 보기에 성공처럼 보인다. 실제로 많은 헌신과 눈물과 기도가 그 성장의 배후에 있었을 것이다. 한국교회의 성장을 단순히 욕망의 결과로.. 2026. 5. 20.
사람보다 AI가 편한 시대, 교회가 회복해야 할 것 인공지능은 이제 사람의 질문에 답하는 기술을 넘어, 사람의 외로움까지 받아주는 존재가 되고 있다. 이것은 단순한 기술 변화가 아니라 인간 내면의 변화이며, 동시에 교회가 깊이 주목해야 할 시대적 징후이다. 최근 한 영상에서 소개된 조사에 따르면, 미국의 십 대 청소년 중 상당수가 이미 AI에게 교제와 위로를 구하고 있다고 한다. 처음 들으면 낯설고 극단적인 이야기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것은 먼 나라의 특별한 현상이 아니다. 이미 우리 곁에서도 많은 사람이 사람보다 AI에게 먼저 말을 걸고 있다. 타지에서 혼자 살아가는 청년이 하루의 공허함을 AI에게 털어놓는다. 관계에 지친 사람이 배우자나 친구보다 챗봇에게 더 솔직한 말을 한다. 익명의 비난에 상처받은 목회자조차 누군가에게 말.. 2026. 5.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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